예술의 혼

예술의 혼

의재(毅齋)와 목재(木齋)의 화맥으로

희재 문장호는 1939년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문동리에서 아버지 문석진(文錫瑨)과 어머니 이계주(李桂珠)씨 사이에 태어났다. 문장호의 어린 시절은 할아버지인 한학자 율산(栗山) 문창규(文昌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한시문집을 남길 정도로 한학에 능통했던 할아버지가 손자인 문장호에게 한학자의 길을 권유하는 바람에 한동안 한문과 한학공부에 열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10세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자주 임모를 하였으며, 그 소질을 살려야겠다는 판단에 외숙인 이계필(李啓苾)의 소개로 17세에 의재 허백련의 화숙에 입문하게 된다.
1957년 문장호가 입문하게 된 해 처음에는 약 3년간 의재의 동생인 목재 허행면에게 사사하였다. 당시 목재의 자택이 광주 학동에 있었는데 함께 사사한 작가로 이상재와 이창주 등이 있었다. 이때 산수기초와 사군자를 깨우치기 시작하였으며, 간혹 2층에 들르는 의재의 가르침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목재 허행면이 부산으로 떠나게 되었으며, 문장호는 다시 의재 허백련의 문하로 들어가 수학하게 된다. 의재가 있는 무등산의 춘목암(春木菴)으로 간 문장호는 산수화를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서 차를 만드는 일을 돕곤 하였다.
한편 그는 1959년에 제 8회 국전에 「분지유록盆池遊鹿」으로 입선을 하게 되면서 1977년 추천작가가 되기까지 무려 20여년 가까이 출품한 끝에 계속 입,특선을 수상하였고 의재화숙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가 추천작가가 되는 1977년은 우연한 일치이지만 그의 스승 의재가 별세한 해이기도 하다.

관념과 실경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

산수쌍곡병 산수쌍곡병(山水雙曲屛) / 1959년 그의 회화세계를 살펴보면 50년대 문장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의재의 필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화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산수쌍곡병」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의재필의 남종산수화 준법이나 포치, 남도산수를 연상케 하는 나지막한 구릉 등에 대한 필법연마는 당시 의재의 제자로서 스승의 화법을 전념하여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송수학령 송수학령(松壽鶴齡) / 1965년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이 시기부터 이미 실경적인 반영을 하고 있는 화풍이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송수학령」에서 볼 수 있는 바다의 풍경이나 소나무의 필의는 관념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는 사물에 대한 사생이 없이는 어려운 화필들이다. 이러한 점은 실재로 의재의 작품에서도 1960년대부터 나타나는 경향으로서 의재와 함께 사생에 나선 경험과 그가 평소 즐겨 찾았다는 남해안의 섬들의 사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라산서정 한라산 서정 / 60년대 초 이러한 실경적인 요소와 전통 남종화적인 요소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작품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시인 신석정이 글을 쓰고 문장호가 그린 1960년대 초 작품인 「한라산 서정」은 이를 잘 말해주는 작품이다. 권券 형식을 갖춘 전지쯤의 가로 크기에 한라산과 구름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무슨 연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시의 내용에 부합하는 지명을 그렸다는 점에서도 실경적 요소가 분명히 드러난다.

해불양파 해불양파(海不揚波) / 1970년대 초 연이어서 1970년대의 「입석추운」,「해불양파」등은 한눈에 대상의 사생을 통해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입석추운」은 이전의 화법과는 완전히 다른 준법과 필법으로 바위산의 형세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해불양파」는 관매도, 진도 등을 자주 찾으면서 사생한 해변풍경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자료로 남아있는 당시 문장호이 작품들이 너무 적은 관계로 그 구체적인 구분은 어려운 편이지만 1960년대는 스승 목재와 의재의 경향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 학습시기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필법으로 독자성 확보 노력

1970년대 부터는 희재 문장호의 독자적인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목재 허행면이 갖는 다소의 탈전통의 기법과 전통적 화법을 의재화 한 남종화의 양면적인 특징을 수학한 그가 선택하게 되는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방향모색으로 이어진다. 이후 그가 남긴 글 중에서도 그 시기의 방향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목재선생에게서 3년 남짓 공부하다 의재선생 문하로 들어갔지요, 의재선생의 그림이 전통산수의 고수에 있었다면 목재선생은 약간 현대감각이 가미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경향이 있었지요. 장점이자 특성만을 이어받아 제 나름대로 소화를 시킨 셈입니다."

라고 말한 부분에서 바로 두 스승의 양립적인 수용을 단적으로 잘 말해준다.

고추만향 고추만향(高秋晩香) / 1970년대 말 이와같은 문장호의 변화는 1970년대의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첫째는 「현대비폭」,「고추만향」등의 작품에서는 계곡의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설정하여 힘찬 필치로 계류의 느낌을 잘 그려내고 있는데서 우선 판이하게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 시리즈에서는 60년대의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며, 스승으로부터 일탈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경향을 존립해 가려는 노력이 한 눈에 파악된다.

"요즘에 그리는 산은 추상화하거나 양식화한 심산유곡이 아닙니다. 늘 가까이서 보는 산, 낯익은 한국의 산을 그리되 근경의 산 부분은 정밀하게 파고드는데 치중하고 있지요. 즉 강조할 데를 강조하고, 생략할 데를 대담하게 생략하는 작업입니다."

둘째는 산수화 이외에도 전통화조, 공필적(工筆的)인 화조경향을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는 산수화를 즐겨하는 경우 「신양입교」와 같은 공필적(工筆的)인 작품들은 거의 대할 수 없는 반면, 문장호는 매우 다양한 소재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70년대 중반 작품인 「신양입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진중한 필선과 예서화(隸書化)된 화제의 우미한 격조는 파도의 선율과 함께 작품 전체에서도 상당한 준에 이른 그의 필력과 산수, 화조의 경지를 엿보게 된다.

더불어서 이 시기에는 청묵을 주로 사용하여 전반적인 먹색이나 운필의 감각을 다소 정적인 분위기로 나타내려는 기법적인 특징이 나타나게 되면, 서서히 자신의 필법으로 전환해가려는 노력이 반영되어진다.

1980년대 초반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변화는 관념산수의 채취가 상당 부분 사라지고 사생을 위주로 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대만, 울릉도 등을 여행하면서 사생한 작품들이나 폭포,바위산 등은 실재라는 대상에 근거를 둔 사실적인 경향까지도 엿보게 되는 구체성을 띠게 된다.

이 때의 특징들은 대체로 초반에는 과다하다시피 전체 화면을 채워나가는 반복된 필법과 준峻,찰擦이 주류를 이룬다. 남도의 자연이 그렇듯이 명확한 부벽준과 같은 필법을 사용할 수 있는 중국의 산수와는 판이하게 다른 완만한 산세와 형세를 띠고 있다. 문장호는 여기에 산수의 부분적인 소재를 즐겨 사용하면서 사생을 겸한 일련의 작업시리즈를 선보인다.

동시에 1980년대 중반에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모아준법(募芽峻法)이다. 이 모아준법은 선도 아니고 점도 아니면서 붓을 부셔서 필법을 구사하는 기법으로, 이후 자신의 주요 준법으로 사용하면서 다시금 이전의 경향과는 다른 변화를 시도한 채로 1990년대로 이어진다.

백두기봉 백두기봉(白頭奇峰) / 1983년

1990년대는 중반 이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면서 작품제작이 어려워지게 된다. 그럼으로서 그의 이번 전시에서도 이시기의 작품들은 이렇다 할 실험작이나 대작시리즈가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이지만 일련의 모아준으로 제작된 작품들과 함께 그의 90년대 초반은 백두산여행에서의 사생작업에서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듯한 경향을 엿 볼 수 있다. 「백두기봉」,「백두산록」등의 시리즈는 이시기의 작업을 엿볼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로서 문장호의 또다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서 그가 시도한 모아준에 대한 평가는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중간단계에서 머무르게 됨으로서 그 결실을 거두었다고 볼 수 는 없다. 특히나 필력을 생명으로 하는 산수화에서의 준법은 불과 몇년의 실험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고도의 연마를 바탕으로 한다. 부서지는 듯하면서 갈필로 단선효과를 나타내는 그의 이 새로운 기법의 실험은 아직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최병식(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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