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취

생애

희재 문장호의 생애

문장호는 1938년 전남 나주군 다시면 문동리에서 출생하였다. 희재는 명필이자 한학자였인 조부 율산 문창규에게서 어릴적부터 글씨와 한학을 배울 수 있었다. 이때 배운 한학의 시문교양은 훗날 문장호의 회화세계를 더욱 곤고히 할 수 있게 한 자양분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공부 못지 않게 서화에도 관심을 가진 희재는 10살 때 집안에 있는 중국매월도들을 임모하고 사군자 등을 배우는 등 장래 한국화가가 될 가능성을 드러낸다.

의재 사진 스승 의재 허백련

1957년에 광주로 나온 후 목재 허행면에게서 사군자를 다시 배웠으며, 산수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증심사 계곡에 있는 춘설헌으로 들어가 의재 허백련의 문하생이 됨으로서 이때부터 의재의 사의적인 전통산수화를 배우며 고전적인 남화정신을 전수 받게 된다. 희재는 의재 문하에 있으면서 1959년 처음으로 국전에 출품하여 입선한 이래, 모두 16차례 입선하였으며, 두 차례 특선하였고, 77년에는 국전 추천작가, 81년에는 초대작가가 되는 등 타고난 재능과 스승의 가르침 아래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또한 한국화협회 창단 발기인, 국제예술교류협회장, 한국선면협회 회장, 연진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문장호는 조선대에서 10년, 전남대에서 3년 동안 강의를 하였으며, 연진미술원 설립·초대미술원장 역임, 삼희화실의 운영 등 고향에 머물면서 지방화단의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하며, 의재로부터 이어온 남도화의 맥을 잇고 전통 남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2년 전시회에서의 모습 1982년 전시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이밖에도 평생 장학사업활동, 불우이웃돕기, 경로잔치 등 봉사활동과 선행활동을 실천하며 예술가로서의 활동 이외에 생활인으로도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부가 내려준 당호 '희재(希齋)'에 깃든 사희현(士希賢), 현희성(賢希聖), 성희철(聖希哲), 즉 성희철(聖希哲)의 3가지 바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월간서울아트코리아 - 희재 문장호展 <문화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조형어법의 탐구> 中
김희랑 /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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